전유성 별세 나이 프로필 책 전부인 진미령 딸 청도 떠난이유 남원 국수집

전유성 선배님의 마지막 길

어제 밤 9시 5분, 한국 코미디계의 거장 전유성 선배님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 76세의 나이로 전북대병원에서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으신 것이다.

솔직히 몇 달 전부터 건강이 안 좋다는 소식은 들려왔다. 기흉으로 고생하시고 계시다는 얘기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설마 이렇게 빨리 우리 곁을 떠나실 줄은 몰랐다. 코로나 후유증과 폐렴, 부정맥까지 겹치면서 몸이 많이 약해지셨던 모양이다.

 

개그맨이라는 이름을 만든 사람

 

내가 보기에 전유성 선배님은 그냥 웃긴 사람이 아니었다. 1969년 방송작가로 시작해서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첫 대중화하였고, 개그콘서트를 최초 기획해서 공개코미디붐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 전까지는 그냥 '코미디언'이라고 불렸는데, 선배님이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써가면서 이 직업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쑈쑈쑈'부터 시작해서 '유머 1번지', '개그콘서트' 같은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만들어내신 분이다. 단순히 웃기는 것을 넘어서 생각하게 만드는 개그, 그게 바로 전유성 스타일이었다.

 

진미령과의 인연

1993년 가수 진미령씨와 결혼했지만 2011년 이혼하게 됐다. 사업 실패와 금전적인 문제들이 겹쳤다고 하는데, 이런 일들이 한 사람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였을까 싶다. 그래도 딸 제비씨와는 끝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셨던 것 같아 다행이다.

 

책으로도 남긴 발자취

선배님은 개그맨으로만 활동하신 게 아니라 책도 여러 권 내셨다. '컴퓨터, 1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같은 컴퓨터 관련서부터 시작해서, '전유성의 구라 삼국지' 같은 유머책도 출간하셨다. 삼국지를 현대적으로 패러디하면서도 풍자와 독설과 웃음 속에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신 게 인상적이었다.

IT가 막 보급되던 시절에 컴퓨터 책을 내셨던 것도 그분의 앞선 안목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시대를 읽고 대중이 필요로 하는 걸 먼저 알아채는 감각이 정말 뛰어나셨던 분이다.

 

청도에서 남원으로, 그 속사정

2018년 선배님이 10년 넘게 살던 청도를 떠나 남원으로 이주하신 일이 화제가 됐었다. 당시 나도 의아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속사정이 정말 안타깝다.

청도군이 지난 7월 '제4회 청도세계코미디아트페스티벌코미디'의 준비를 사전 협의없이 다른 업체에 맡기면서 갈등을 빚어왔다고 하시더라. 10년 동안 청도 코미디 발전을 위해 애쓰신 분을 이런 식으로 대하다니,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다.

일부 지역 사람들이 전유성을 외지인 취급하고 간섭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청도군측은 그 사람들 편들어주고, 코메디 관련 행사에서 전유성을 제외하려고 했다니. 지역 발전을 위해 애쓰는 분을 외지인이라고 배척하다니, 정말 화가 난다.

결국 지난해 9월 전북 남원시 인월면 지리산 자락에 거처를 정하셨다고 한다. 남원에서는 따뜻하게 맞아주셨다고 들었다. 사방이 지리산으로 둘러싸인 전북 남원시 인월면 중군마을에서 조용히 지내시면서도 '남원으로 이사 온 전유성입니다'라는 제목의 국악 콘서트에 출연해서 특유의 입담을 풀어놓기도 하셨다.

 

남원국수집 이야기

남원으로 이주하신 후에는 국수집도 운영하셨다고 들었다. 선배님 특유의 정성과 꼼꼼함으로 손님들을 맞으셨을 게 뭔가 눈에 선하다. 개그는 기발하게 하시면서도 국수만큼은 정통 방식으로 끓이셨을 것 같다. 그런 선배님의 진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한 그릇이었을 텐데, 이제 그 맛을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사실 청도 시절에도 이런저런 음식점을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방송으로만 먹고살기 어려웠을 때도 있으셨을 텐데, 그런 와중에도 항상 성실하게 살아오신 모습이 존경스럽다.

 

마지막까지도 개그맨다웠던 분

 

김학래 회장 말에 따르면,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는 곧 죽어"라고 농담을 하셨다고 한다. 진짜 천생 개그맨이셨구나 싶다. 아픈 와중에도 주변 사람들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꾸려 하신 게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더 아프다.

 

개인적인 생각

나는 전유성 선배님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그분이 만든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자랐다. 요즘 개그들이 너무 자극적이고 빠르게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 선배님의 개그는 달랐다. 느리지만 깊이가 있고, 웃고 나서도 뭔가 생각해볼 거리를 남겨주는 그런 개그였다.

청도에서의 일들을 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지역을 위해 애쓰는 분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고 외면하는 게 어디 청도만의 문제겠나. 우리 사회가 진짜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부족한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남원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시려던 모습이 대단하셨다.

 

희극인장으로

장례는 희극인장으로 치러진다고 한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고, 수목장을 원하신다고 하니 그 뜻대로 해드려야겠다.

후배 개그맨들이 영상편지를 보내서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는 얘기를 들으니 가슴이 먹먹하다. 그 영상들이 선배님께 작은 위로라도 됐을까.

 

남은 이야기

전유성 선배님이 떠나시면서 한국 개그의 한 시대가 정말 끝나는 것 같다. 요즘 젊은 개그맨들이 선배님 같은 깊이 있는 유머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

빠르고 자극적인 것만 찾는 요즘 세상에서,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개그를 만드는 사람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선배님이 뿌려놓은 씨앗들이 후배들을 통해 계속 자라나길 바란다.

마지막까지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전유성 선배님, 이제는 편히 쉬시길 바란다. 그리고 남겨주신 웃음과 가르침, 그리고 책들과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의 추억까지, 후배들이 잘 이어받을 테니 걱정 마시고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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