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전한길 프로필 국민의 힘 입당 본명 한국사강사 총정리

by 데일리시시 2025. 8. 9.
반응형

전한길, 한국사 강사에서 정치 논란 중심으로…그는 왜 ‘배신자’를 외쳤나

2025년 8월 8일, 대구 북구 엑스코.
국민의힘 대구·경북 합동연설회가 열리던 오후, 현장은 애초의 계획과 달리 차갑게 긴장한 공기로 가득했다.
무대 위에서 차기 지도부를 향한 비전이 발표되는 동안, 청중석 한편에서는 뜻밖의 ‘변수’가 등장했다.
그 인물은 전한길이었다.


무대 위보다 뜨거웠던 객석

반탄파 후보가 마이크를 잡자 전한길은 큰 박수와 환호로 호응했다.
하지만 찬탄파 후보가 연단에 서자, 그는 표정을 굳히고 갑자기 목청을 높였다.

“배신자!”

그 한 마디는 단순한 야유가 아니었다.
주변에 있던 지지자들이 즉각 반응하며 같은 구호를 외쳤고, 함성은 연설장 안을 순식간에 뒤덮었다.
몇 초 만에 물병이 날아들고, 고성이 오가고, 사람들 사이로 밀침이 시작됐다.
전한길은 의자 위로 올라서더니 손을 높이 들고 군중을 향해 말했다.

“다 같이 외칩니다! 배! 신! 자!”

그 순간, 연설장은 축제가 아닌 전쟁터가 됐다.


당 지도부의 긴급 대응

행사가 끝나기도 전에 당 지도부는 움직였다.
송언석 비대위원장은 “전당대회를 분열과 혼란의 장으로 만든 행위”라고 규정하고,
전한길을 비롯해 대의원 자격이 없는 인사들의 전당대회 출입을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전한길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건 명백한 언론 탄압”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리고 바로 다음 지역 일정인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 참석 계획까지 밝혔다.


전한길, 그는 누구인가

전한길(본명 전유관)은 1970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났다.
농촌에서 성장하며 학업과 생계를 병행했고, 경산고를 졸업한 뒤 경북대에서 지리학을 전공했다.
이후 교육대학원에서 지리교육 석사, 대학원 사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7년 대학원 재학 중 학원 강단에 섰고, 2002년 인터넷 강의를 시작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EBSi, 메가스터디, 공단기 등에서 한국사 강의를 진행했고, 특히 공무원 시험 한국사 분야에서는 ‘1타 강사’로 불렸다.
그의 이름을 딴 ‘전한길 한국사 필기노트’는 수험생 필수 교재로 자리 잡았다.


정치 무대로의 이동

교육계 스타였던 그는 2024년 말부터 정치적 발언을 본격화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계엄령 지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했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수십만 명에서 100만 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그는 스스로를 “극우가 아닌 상식파”라 부르지만, 발언 수위는 거침없다.
“선관위는 조폭·마피아 같다”는 직격, “우파의 개딸 수십만 명 만들겠다”는 결집 전략,
심지어 당내 주요 인사인 한동훈 전 장관까지 비판하며 정치권에 확실한 존재감을 남겼다.


왜 ‘배신자’를 외쳤나

그가 이날 구호를 외친 대상은 찬탄파 후보들이었다.
그는 이들을 “보수의 근간을 무너뜨린 인물”로 규정하며 현장에서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하지만 그 방식이 ‘정당 행사 방해’라는 비판에 직면했고, 이는 곧 징계 절차로 이어졌다.


사건 이후의 흐름

  • 8월 8일: 대구·경북 합동연설회 소동 발생
  • 8월 9일: 국민의힘, 전한길 출입 금지와 중앙윤리위 징계 절차 개시
  • 현재: 전한길, 언론 인터뷰와 유튜브 방송에서 입장 고수
  • 향후: 다른 지역 전당대회 참석 여부가 새로운 논란 촉발 가능성

결론 – 한 사람의 행동, 당의 균열

전한길은 더 이상 ‘한국사 강사’라는 틀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영향력은 강의실을 넘어 정치 무대 한가운데까지 확장됐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돌발 행동이 아니라, 국민의힘 내부 계파 갈등과 정체성 위기를 압축적으로 드러낸 장면이다.

향후 징계 결과가 강경하게 나올지, 혹은 온건하게 마무리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전한길이라는 이름은 당분간 정치 뉴스 헤드라인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반응형